조용필 가수 학력 프로필 나이 노래

조용필 가수 학력 프로필 나이 노래

반응형

조용필은 가수이다.

조용필의 본관은 임천이다. 조용필 그는 1969년 미8군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창밖의 여자》로 정식 데뷔했다. 수 많은 히트곡과 한국 내 최대 콘서트 인원 동원 기록, 예술의 전당 7년 연속 공연 기록을 가지고 있다.​



조용필은 1950년 3월 21일,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송산면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임천이다. 1969년에 경동고등학교를 25회로 졸업하고 컨트리 웨스턴 그룹 애트킨즈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다가 1969년에 '화이브 핑거스'를 결성하여 미 8군 무대에 데뷔하였다

1971년, 김대환, 조용필, 최이철을 주축으로 결성된 3인조 음악 그룹 김트리오로 본격적인 락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2년, '드럼! 드럼! 드럼! 앰프키타 고고!'라는 연주앨범을 발매하였고, 수록곡 "Lead Me On"이 선데이 서울컵 팝그룹 콘테스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여학생을 위한 뮤지칼 사랑의 일기'라는 앨범에 "님이여", "사랑의 자장가", "케사라", "하얀 모래의 꿈"을 녹음하게 되는데 이게 사실상 조용필의 노래가 들어간 첫 앨범이다. 이때 KBS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 "돌아오지 않는 강"도 녹음했다.​



1972년 조용필은 "그룹 25시"를 결성해서 활동했고, 1973년 방위병으로 소집되어 해안경비병으로 복무했다. 복무기간 중에도 퇴근 후 음악 활동을 계속하면서 1974년 경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다. 26세가 되던 1975년에 솔로로 전향하여 발표한 트로트 음악,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처음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재일교포 고국방문과 맞물려 발표된 이 노래는 부산에서부터 인기가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퍼졌고, 조용필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2011년까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전국 투어 콘서트를 마치고 2012년에는 약 10년 만에 정규 19집 앨범을 제작하는데 매진했으며, 드디어 2013년 4월 23일 발매 예정이었던 정규 19집 앨범 "Hello"의 수록곡 중 하나인 "Bounce"를 4월 16일에 먼저 선공개했다. 음원이 선공개 되면서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는 등 다시 한 번 조용필의 귀환을 알렸으며, 일주일 뒤인 4월 23일에는 타이틀 곡인 "Hello"와 나머지 8곡을 모두 공개 하였다. 공개 후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했을 뿐만 아니라 당일 오프라인 발매를 시작한 음반 판매도 아침 시간부터 조용필의 정규 19집 앨범을 구매하기 위해 조용필 팬들 뿐만 아니라 10, 20대들까지 모두 1천 여명의 팬들이 음반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등 침체된 음반 시장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이는 2009년 서태지 이 후로 4년 만에 일이다. 당일 오후 8시에는 데뷔 이 후 갖는 첫 쇼케이스가 열리기도 했다. 이 후 선공개 되었던 "Bounce"는 빌보드 K-Pop 차트에서 1위를 차지 하였으며, 4월 26일 방송된 뮤직뱅크에서 5위에 올라서는 등 다시 한 번 그의 저력을 과시하였다. 일주일 뒤 5월 3일에는 23년만에 지상파 가요순위 프로그램 정상에 올라서게 되었고, 11월 22일에 개최된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3개 부문 대상에 속하는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2월 20일 방송된 뮤직뱅크에서 2013 연말결산 차트 1위를 차지하였다.

조용필의 사건
1977년 5월 6일, 조용필은 2년 전에 대마초 흡연이 적발되어 1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으나 1977년 3월부터 대마초 사건이 불거지면서 "더이상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겠다"며 돌연 은퇴선언하였다. 그는 자숙기간을 가지고 1978년 2월 14일에 한국연예인협회의 무대출연허용으로 가요계에 복귀하였다.​



조용필 무면허 음주운전, 교통사고
1993년 12월 1일, 오전1시 50분쯤에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에서 벤츠승용차를 운전하던중 중앙분리대에 설치되어 있던 지하철 환풍구에 충돌하여 중상을 입고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였다. 당시 수사경찰은 조용필이 무면허 상태였다는 점과 인근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했다는 점을 비롯하여 조용필이 음주운전을 했다고 진술하였다.

빼앗긴 저작권, 네티즌들의 서명운동
2013년 4월 18일 신대철이 조용필의 대해 알려지지 않은 안타까운 사연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했다. 지난 2000년에 조용필은 지구레코드사에 주요 작품의 저작권을 모두 빼앗긴 사실이 밝혀졌으며 1986년 지구레코드사 대표가 조용필과 음반 계약을 하면서 '창밖의여자', '고추잠자리'등 조용필의 31곡에 대해 '저작권일부양도' 계약을 슬쩍 끼워 넣었던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저작권에 대해 인식이 부족했던 조용필은 그 계약이 무슨 의미인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고, 결국 31곡에 대한 복제 배포권과 유무형복제권은 지구레코드사 대표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저작권이 넘어간 31곡에는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촛불, 일편단심 민들레야, 물망초, 고추잠자리, 못찾겠다 꾀꼬리, 비련, 나는 너 좋아, 황진이, 그대여, 미지의 세계, 아시아의 불꽃, 여행을 떠나요 등 일부 가수들의 대표곡들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용필은 상황 파악 후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대법원까지 가는 공방 끝에 2004년 패소하면서 결국 빼앗긴 저작권을 되찾아오지 못했다. 이 후로도 조용필은 자신이 작사 작곡한 곡을 녹음하거나 공연 실황을 음반으로 판매할 때마다 지구레코드사 대표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해야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신대철이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진 글은 조용필의 신곡 발표와 함께 순식간에 퍼져 SNS를 달구고 있다.[6] 이 사실을 알게된 네티즌들은 자발적으로 온라인을 통한 서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해당 서명운동은 하루만에 3천 8백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네티즌들의 서명운동은 뜨거웠으며, 이듬 해 2014년 2월 11일, 27년만에 해당 31곡 저작권을 모두 되찾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조용필의 고향 출생일
1950년 3월 21일 (69세)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

조용필의 학력
1963년 송산국민학교 졸업
1966년 경동중학교 졸업 (1972년 2월 29일 폐교)
1969년 경동고등학교 졸업​



반응형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